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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멋진 판타지 - 김서정, 굴렁쇠(2002) 『멋진 판타지』 - 김서정, 굴렁쇠(2002) 문학의 위기를 말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영상의 시대를 맞이하여 어떤 평자들은 소설은 이제 영상이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글을 쓰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래서야 문학은 더욱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 류의 주장들 - 문학은 영상매체가 따라올 수 없는 표현, 보다 복잡한 심리묘사와 난해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는 방식으로 문학성을 고수해야 한다 - 은 어제오늘 나온 것은 아니다. 결국 이런 류의 주장은 모더니즘이 일찌기 주장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앞으로의 문학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한 예술로 점차 사멸해가는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서구의 고전음악이라.. 더보기
티토 - 재스퍼 리들리 지음 |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2003) 『티토』 - 재스퍼 리들리 지음 |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2003) 뛰어난 전기 작가의 세 가지 덕목 오늘날 전기 작가가 주는 인상은 힐러리 클린턴이나 마돈나 같은 인물의 뒤꽁무니를 추적해 이들이 구태여 감추고 싶은 것들을 파헤쳐 가십거리를 양산해내는 옐로우 페이퍼를 연상하거나 아니면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에게 고용된 대필 작가들이 쓰는 자서전 형태의 전기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시기나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은 일반 대중의 흥미를 유발한다. 사람들은 소위 잘 알려진 이들의 배꼽 아래 이야기와 같이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 탓인지 우리 사회에서 전기문학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런 인식에 변화를 주게 된 것은 『체 .. 더보기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 - 신현준 | 문학과지성사(1997)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 - 신현준 | 문학과지성사(1997) 역사 서술의 한 방식이자 대표적인 것으로 통사(通史)란 것이 있다. 시대 순으로 중요한 사건과 경험들을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 교과서가 바로 이런 통사의 일종이다. 역사 서술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통사는 역사를 강물에 여러 지류들이 합류하며 흘러가는 것처럼 기술되는 특성을 지닌다. 통사가 역사 서술의 시작이라는 것은 역사란 것이 기본적으로 시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출발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종착점이라 함은 역사 기술이 하나의 사관에 따라 조합되고 정리되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사적 서술이 만능은 아니다. 특히 록음악과 같이 하위 장르가 잡초의 뿌리처럼 분화해간.. 더보기
레드 콤플렉스 - 강준만 외 | 삼인(1997) 레드 콤플렉스 - 강준만 외 | 삼인(1997) 우리는 어떤 영화배우나, 감독들에 대해 알고 싶을 때 ‘필모그래피(filmography)’란 것을 살핀다. 필모그래피란 ‘특정 배우감독의 작품 리스트; 영화 관계 문헌’을 의미한다. 영어에서 ‘그라피(graphy)’란 말을 동양의 그것으로 바꿔보면 대략 ‘~지(誌), ~기(記)’의 뜻을 갖는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기록을 일대기(一代記)라고 할 때의 그것과 같은 말이다. 어떤 배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궁금해지고,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중심으로 영화보기, 영화읽기 하는 것은 오늘날 영화에 취미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중적인 시도인데, 종종 어떤 배우들은 그에 대해 처음 받았던 인상과.. 더보기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옮김 | 생각의나무(2004)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옮김 | 생각의나무(2004) 왜구 혹은 사무라이 "사무라이", 본래 사무라이는 말은 귀족출신의 무사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12세기부터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정치를 지배한 무사계급에 속한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이후 사무라이 문화는 왕실문화와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그들만의 절도를 지닌 문화로 형성되었는데, 무로마치 시대부터는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다도 혹은 꽃꽂이와 같은 일본 고유의 예술을 탄생시키도 한다. 일본하면 저절로 벚꽃과 사무라이를 연상하게 되는 건, 단지 일본인들 스스로 "꽃 중의 꽃은 벚꽃이고, 사람 중의 사람은 사무라이"라고 말하기 때문은 아니다. 조선 시대 이래 "선비" 가 우리 문화와 뗄 수.. 더보기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 석기용 옮김 | 이마고(2003)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 석기용 옮김 | 이마고(2003)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역시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성공적인 수준의 독서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우리는 오랜 군사독재시대를 거쳐왔기 때문인지, 한국전쟁이라는 지긋지긋한 체험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한 탓인지, 오랜 문치 시대의 문약에 젖은 탓인지 몰라도 군사 문제 혹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향이 있다. 새 사냥꾼들이 꿩을 잡는데는 꿩의 습성을 이용한다고 한다. 꿩은 갑자기 놀라면 머리를 땅에 박고 고개를 들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처럼 자기 시야를 스스로 가림으로써 공포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습성을 이용해 사냥한다는 것이다. 전쟁 혹은 전쟁사에 대한 연구,.. 더보기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영화에는 오마주(hommage)란 말이 있다. 창작자인 감독이 자신의 특별한 존경을 담아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 오마주는 불어로 존경과 경의를 뜻한다.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오마주의 방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한다.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한자로 쓰면 "불초(不肖)"가 된다. '불초'란 말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로 "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더보기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외곽 샌디먼트라는 곳에서 영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가 영국계라고는 하나 그의 집안은 200년 이상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그의 가계는 대대로 성직자 집안이었으나 부친 J.B 예이츠는 법률공부를 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부친이 화가였다고는 하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예이츠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화가를 포기하고 시업에만 전념했다. 내가 예이츠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아직 대학생이지 못하던 시절 어느 후미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더보기
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벌핀치,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노라면 천지창조, 신과 영웅이야기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세 가지 구분으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생각으로 세 권의 『바가바드 기타』 관련서적을 구입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와 간디의 해설로 된 기타를 이현주가 옮기고 당대에서 펴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비노바 바베가 짓고, 김문호가 옮겨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천상의 노래』가 그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인도 정신의 꽃’이라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이 나름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좀 수월하게 .. 더보기
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 눈빛(1990) 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 눈빛(1990) 지난 2005년은 여러모로 흥미 있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해였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1905년의 을사조약 100년인 해이다(그 외에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Don Quixote)』가 세상에 나온 지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거기에 우리가 일본과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을 맺은 지도 40주년이 된다. 우리에게 해방과 지배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복원이라는 의미를 담는 사건들이 같은 끝자리수를 갖는 해에 모두 일어났다는 것은 시간차를 두고 생각해볼 여러 가지 것들을 던져준다.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 1936년생이니 어느덧 칠순이 넘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