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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김경미 - 바람둥이를 위하여

바람둥이를 위하여

- 김경미

1

걷지 못하는 민들레가
바람을 만나니 걷잖아 탁 ! 터져서
간음 없는 마음이 흔하랴

그런 거야 욕하지 마
바람둥이들
한번 누운 곳 정 못 들이는
지상에서 영원히 단잠 못 이루는


2

욕하지 마
먼지처럼 어디에나 몸을 묻히는 마음
아세톤처럼 어디에서나 쉽게 마음 휘발되는
몸의
사랑
고단하게
귀한거야

*

'바람둥이'란 말은 치욕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김경미 시인은 그 고단함을 아는 모양이다. "한 번 누운 곳 정 못 들이는 지상에서 영원히 단잠 못 이루는" 바람둥이는 어쩐지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 선장(Der Fliegende Hollander)> 같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아니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영원히 지상에 오를 수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떠돌이가 되어 폭풍우치는 바다 위를 떠돈다.

누군가에겐 그도 귀한, 고귀한 사랑일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