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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황동규 - 더딘 슬픔


더딘 슬픔

-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므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

어려서 할미를 어미인 양 여기며 살았다. 나 결혼하는 것까지는 보고 돌아가실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다던 할머니는 정말 나 결혼한 이듬해 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퇴근하고 돌아와 이제 막 잠들려는 찰나에 받은 전화로 할머니의 부음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당신의 죽음이 주는 황망함이 아니라 그 순간 너무나 침착하고 냉정한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로부터 왔다.

만약 그 순간 내가 눈물이라도 펑펑 흘렸다면 앞으로 오게 될 장례 절차들이나 복잡다단한 일감들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내 양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면 나는 그보다 훨씬 단순하게 나의 슬픔에 대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일찌감치 양복을 차려 입고, 검정 넥타이를 동여매면서도 나는 슬프지 않았고, 슬프지 않은 내가 괘씸했다. 치매가 시작된 후 7년 가까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늙은 고목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시들어갔고, 마침내 마지막 숨을 거두셨을 때 어쩌면 남들도 나처럼 안도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나의 침착함과 냉정함이 쉽게 용서되지 않았다.  

장례 절차의 막바지에 이르러 당신을 염하기 위해 굳게 닫힌 냉장고 문이 열리고 마른 북어처럼, 혹은 동태처럼 그렇게 뻗뻗하게 굳어버린 당신의 몸을 염쟁이가 닦아내고, 고모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와중에도 내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내 멱살을 죄고 흔들며 수도 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 나쁜 새끼..." 할미가 담긴 관을 들고 영구차에 옮겨실으면서도 바짝 말라 돌아가신 할머니가 왜이리 무거운지, 날은 또 왜그리 추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할미를 담은 영구차가 출발하고, 뒤를 이어 유족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데 내 영혼은 유족들이 탄 버스에 담겨 있지 않고 저만치 뒤에서 버스를 쫓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멀리 할머니가 묻힐 공원묘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눈물을 내가 느꼈을 무렵부터 할미의 관이 땅에 묻히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이후의 기억이 내게 없다. 삼촌들과 고모들이 내가 많이 울었다고, 많이 슬퍼했다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혀를 끌끌 차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하는데, 내겐 그 기억이 없다.

때로 진짜 상실감은 매우 더디게 온다. 슬픔이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