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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사회과학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2004)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2004)



전후 일본인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로 최근 영화화된 역도산이 있다고 한다. 정확히 알 수야 없는 일이지만 그런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는데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교징(巨人)'이다. 일본 야구팬들의 성향 자체가 '교징'과 '안티교징'으로 상징된다 할 수 있는데, 안티교징의 대표 격인 팀이 한신 타이거즈다. 자이언츠가 도쿄(관동)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일본 만화를 애독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타이거즈가 위치한 오사카 등 간사이(관서) 지역 사람들은 독특한 지역색으로 도쿄에는 지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있다. 타이거즈는 이런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매년 '교징을 누르자'는 타도 교징의 구호를 앞세웠지만 성적은 매번 변변치 않았다. 그런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타격의 신', '일본 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 '일본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사'로 꼽혔던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감독이 영입되면서 우리에게 '히딩크 열풍'이 있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노무라 열풍'이 불었었다. 변변한 스타가 없는 만년 꼴찌팀들을 강팀으로 변모시키는 그의 독특한 리더십(ID야구, 데이터야구)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일본에 새로운 활력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런 노무라 열풍 뒤엔 아내 사치요(沙知代)가 있었다. 노무라 열풍에 힘입은 탓인지, 사치요 자신의 재능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몇 차례의 방송을 통해 사치요의 거침없는 독설, 명장 노무라 감독을 절절 매게 하는 그녀의 입담은 매사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방송사에서 '사치요 모시기'에 나선 것도 그런 사치요의 인기 덕이었다. 그녀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아이 문제로 상담해온 이에게 "당신이 그렇게 사니까. 아이가 문제아가 되는 거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충격을 주곤 했다. 그런데 노무라 감독은 지난 2001년 12월 아내 사치요 때문에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직을 불명예 퇴임했다. 그의 아내 사치요가 탈세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사치요는 자신과 남편의 수입을 관리하는 회사를 설립한 뒤 3년간 2억엔의 법인세 및 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재기 넘치는 입담과 직설적인 화법, 거침없는 독설로 무장했던 사치요는 자신의 학력을 속였다는 혐의로 방송가에서도 퇴출당하고 만다.

나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읽으며 독설(毒舌)의 힘, 미학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를 잠시 궁리해 보았다. 앞서 사치요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독설은 다음 세 가지 덕목에 기댈 때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덕목은 "첫째는 진실, 둘째는 애정, 셋째는 풍자"다.

갈레아노는 우루과이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1971년 "수탈된 대지(범우사)"로 처음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월드컵 시즌 무렵 발간된 "축구, 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로 잠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상황들을 보여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1493년 무렵부터 유럽에서 매독이 번지기 시작하고, 이것이 중국에 옮겨진 것은 1505년경의 일이었고, 일본은 1512년, 조선은 1515년경에 유입되어 창병(瘡病)이란 뜻에서 당창(唐瘡)또는 광동창이라 불렀다. 매독이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번지는데 12년, 다시 조선까지 번지는데 2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세계화는 이렇게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에이즈가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병 사례가 보고된 뒤 국내에서 나타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괴질로 등장하고 있는 조류 독감과 사스는 아마 그보다는 훨씬 빨리 전파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몇몇 지명과 인명을 제외하면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그네들 상황과 우리 상황으로 구분해서 볼 일이 아닌 거다. 세계화는 이라크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갈레아노는 이렇듯 빠른 시간 축을 가지고 움직이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질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일반 독자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닌 해악은 무엇인지 빨리 알려주려는 마음에 이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20년 혹은 30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은 불의의 산물이었다. 좌파는 그것을 고발했고, 중도파는 인정했으며, 우파는 아주 드물게 부정했다. 세월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가난은 무능력에 대한 정당한 벌이다. 가난한 자에겐 연민이 일어나지만 더 이상 가난이 의분을 유발하지 않는다. 운명의 손길이나 기회가 오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폭력이 불의의 자식인 것도 아니다. 지배 언어, 그 대량 생산된 이미지와 단아는 거의 언제나 당근과 채찍의 체제를 위해 소임을 다한다."(본문 43쪽) 그래서 이 책의 구성은 학교의 교과서와 흡사한 면모를 보인다. 물론 내용은 절대 고리타분하지 않다. 목차는 교과과정이란 말로 대신하고, 초급과정에서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공포에 관한 강의, 윤리학 세미나'를 진행하고 상급과정에선 '불처벌, 고독의 교육학, 대항학교'를 가르친다. 갈레아노의 이 책이 지닌 힘은 독설의 미학, 그 가운데서도 진실에 기대고 있다. 우선 그는 세계화의 진실을 가르친다.

냉전 종식 이후 몇 년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무기 판매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세계 무기 시장은 1996년 총 판매액이 400억 달러에 이르러 8% 성장을 기록했다. 무기 수입국의 선두 주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총 90억 달러를 퍼부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권 유린 국가의 선두 자리도 고수하고 있다. 1996년 국제사면위원회는 "구금자를 고문하고 학대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계속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은 최소한 27명에게 120대에서 200대의 태형을 선고했다. 그들 중에는 24명의 필리핀인이 포함되어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애 행위를 문제 삼아 이 같은 처벌을 내렸다. 최소한 69명이 사형을 선고 받아 처형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파드 국왕이 이끄는 정부는 정당과 노조 설립을 계속 금지해왔다. 언론 검열도 지속적으로 매우 삼엄하게 이루어졌다."<본문 132쪽>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은 갈레아노의 말대로 지난 수십 년간 서방 인권 단체의 공격 대상이었다. 한해 평균 60-70명가량이 고문 등에 의한 강압적인 수사 과정을 거쳐 사형당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이슬람 율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참수형이다. 여성은 사회 진출은 물론 운전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들 가운데 누구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최대의 무기 수입국 가운데 하나이자 중동 지역 최고의 미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허용되고 있는 이란의 인권 상황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세계화는 이런 인권문제와 마찬가지로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보편적 선과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들이 있다. 그들은 식당에서 "술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니가 갖다 처먹어"라고 말한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손님의 주문엔 "술 좀 작작 처먹어"라며 응하지 않기 일쑤다. 손님들은 푸대접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런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 욕쟁이 할머니들의 욕설이 상대를 비하하거나 욕보이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장사수완이기 보다는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 같은 느낌을 전하기 때문이다. 갈레아노의 독설엔 애정이 담겨 있다.

자기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 희망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희망이 무슨 지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기말, 천년의 끝. 세상도 끝인가?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남아있는가? 휩쓸려가지 않은 땅과 살아 숨쉬는 물은? 병들지 않은 영혼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아프다(enfermo)'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계획이 없는'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갖가지 심한 유행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병이다. 그러나 또 어떤 누군가는 보고타의 어느 담벼락을 지나다가 이런 글을 남겨 두었다. "더 좋은 날들을 위해 염세주의는 내버려 둡시다."
우리가 희망을 갖는다고 하고 싶을 때, 에스파냐어로는 희망을 품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표현이자, 아름다움 도전이다. 흘러가는 이 시대의 무자비한 바깥 공기를 쐬며 노천에서 얼어죽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본문 334쪽>


독설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조롱이란 점에서 욕설과 흡사한 면을 지닌다. 어떤 이는 욕설은 "민중의 시(詩)"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욕설은 직접적인 언술이란 점에서 독설과 분리된다. 독설은 강장에 대한 조롱이자, 풍자이며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선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지만 현실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브라질의 주교 엘데르 카마가 말했다. "그런데 왜 먹을 게 없느냐고 물어보면, 날 빨갱이라고 해요." <본문 326쪽>

해마다 연말이면 시민단체에 후원을, 사회복지를, 자선냄비에 몇 푼의 돈을 집어넣으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사회에 뭔가 좋은 일을 했다고 위로하면서 이때의 자신은 시혜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지역감정 타파를 주장하면서 철따라 돌아오는 선거에서는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투표한다. 권력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개혁은 위장일 뿐임에도 포장된 개혁의 이면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포기에 이른다. "어쩌다 정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 높은 하늘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체념하는 동안 "여기 지상에서는 불의는 불의인 채 여전히 그대로"이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부정부패가 유일한 법이다. 부정부패가 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미덕과 명예와 법은 우리의 삶에서 증발해 버렸다”고 말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악명 높은 갱단 두목 알 카포네였다.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알 카포네가 세상의 도덕을 개탄하는 뒤집혀진 언술,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세계화를 극소수의 승자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대다수의 패자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경주에 비유한다. 지난 11월 수능시험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떠들썩하다. 방법보단 결과를 앞세우는 교육 환경,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이 보란 듯이 행해지는 입시지옥에서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갈레아노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거꾸로 된 것이다. 아니면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학교만 뒤집어지길 바라는 게 이상한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