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후 -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 내가 기거하는 하루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바람의 길 옆이라 담배라도 한 대 태우기 위해 그 길 옆에 서면 하루종일 바람소리가 '휘이휘이~'하며 불어댄다. 하늘, 바람, 구름, 돌, 꽃, 나무, 숲, 달, 강, 호수, 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연의 이름들이지만 이중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은 '바람'. 잡히지 않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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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 후회는 없을 거예요
후회는 없을 거예요 - 황인숙 후회 가득한 목소리로 오, 오, 오오, 여가수가 노래한다 남겨진 여자가 노래한다 마음을 두고 떠난 여자도 노래한다 후회로 파르르 떠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마사이 워킹화를 산다 판매글 마지막에 적힌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한 구절에 일전엔 돌체앤가바나 손목시계를 샀다 작년 여름엔 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후회는 없을 거예요 벌써 후회하는 듯한, 후회는 없을 거예요 서글픈 목소리로 나직이,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시계와 카메라는 상자째 서랍 안에 있다 후회는 없다 오, 오, 오오~ 황인숙, 문학과사회, 2008년 겨울호(통권 84호) * “킥킥”, 황인숙의 신작시를 읽으며 나는 “킥킥” 웃었다. 오다가다 서너 번 스쳐갔던 것이 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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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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