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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인문학

스티븐 아노트 - 섹스 : 사용설명서 1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섹스 - 사용설명서 1
스티븐 아노트 지음, 이민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7월

 

큭큭... 책을 받아들고 나는 두 번 웃었다. 한 번은 책 보내준 이의 꾸밈없이 순수한 감정이 읽혔기 때문이고, 다음 한 번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였다. 잠깐 출판사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직업상의 이유로 그리고 책 읽는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알게모르게 그 책을 만들어내는 곳과 사람들에 대해 '감정(feeling)'이란 것이 생긴다.  최근에 칼 G. 융에 대한 간략한 개설서를 읽었으니 그를 잠시 호명하여 이야기해보자. 융에 의하면 감정이란 '사고(thinking)'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정신적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각이나 직관과 달리 이성적인 기능으로 분류된다. 내가 융을 프로이트보다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감정이 이성적인 기능이란 사실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우리는 감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사물을 가치 순서대로 나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성적인 기능이고, 그러므로 감정형(감정적이 아니고)의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인간 관계라고 말한다. 독자와 출판사의 관계를 집단 대 개인의 관계로 단순히 환원시키지 않는다면 출판사 역시 하나의 이미지를 갖는다. 일종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뿌리와 이파리"란 출판사는 내게 몇 개의 이미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첫째는 미안한 마음이다. 강상중 선생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를 서평하기로 해서 출판사로부터 공짜로 책을 받아 챙겨놓고, 적당한 서평자를 물색하지 못하는 바람에 책만 공짜로 얻어본 꼴이 된 것이다. 이럴 때 그쪽 편집부 직원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몇몇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곤 신문 지면을 얻어 광고 한 번 한다는 게 사운을 건 일이 되곤 한다. 그도 아니면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 보내놓고, 이들의 기사 한 줄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나도 해봐서 안다. 물론 그 기자들도 나름대로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쓰지만 인간의 양심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말이다. 내가 속해있는 잡지에 서평이 실린다고 판매에 끼치는 영향이야 미미하기 짝이 없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키게 된 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둘째는 고마운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고고학자 이선복 선생의 팬이다. 예전에 가서원이란 출판사, 실은 그보다 좀더 오래전 "사회평론 길"에 연재될 때부터 이 분의 글은 나에게 고고학이란 미답의 학문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책이 절판되었다가 다시 뿌리와 이파리를 통해 재출간(이선복 교수의 고고학이야기)되었다. 혹시 핵 물리학자 폰 노이만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아는 분들은 게임이론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게임이론으로 인간본성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본다는 최정규 선생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란 책이 있다. 이 책 역시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나는 이 책의 초판 1쇄와 2쇄를 모두 갖게 되었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1쇄와 2쇄는 재인쇄를 했다뿐이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출판사는 1쇄에서 잘못된 부분들은 대폭 수정해서 새로 책을 만들었다. 실질적으로는 재판인 셈이다.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 책을 다시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이상에서 언급된 책들은 차차 시간 되는 대로 서평으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자,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 대한 칭찬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다만, 책의 만듦새에 대한 점에서 신뢰를 보낼 만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나름의 원칙은 원고료를 받아 서평을 쓴 책에 대해서는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공짜로 받은 책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걸 흔히 말하듯 뽐뿌질로 생각하고 읽겠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책의 첫페이지를 펼치니 "스티브 아노트"란 이 책의 작자가 얼마나 요설스러운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아마도 지금 내 글이 이렇듯 막 나가는 까닭도 그의 책을 읽은 후유증이리라. 까놓고 보면 우리네 몸이란 얼마나 거기서 거기란 말인가. 가끔 우리는 단순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가리켜 "단세포"라고 말한다. 성서에도 나오지만 태초에 섹스는 없었다. 섹스는 없고, 오로지 말씀만 있던 시절이 아마 "단세포"의 전성기였으리라. 자기를 복제하여 번식하는, 사랑에 주린 외로운 단세포 유기체가 존재했다. 자기 세포를 분열하여 후손세포를 생산하면, 그 후손이 다시 자라나 자기 몸을 분열하는, 그런 고독한 과정... 순전히 성서적인 맥락에 보자면 스티브 아노트는 이브에게 정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에게 이런 책을 쓰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말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으니 더더욱 감사해야 하겠지.

 

이 책의 원제 "Sex : A User's Guide" "섹스 - 사용설명서"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유저스 가이드"란 말은 분명 사용설명서란 뜻이지만, 사용설명서를 뜻하는 다른 말 "매뉴얼(manual)"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매뉴얼은 말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에 한정된 것이지만 가이드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사용설명서이기 보다는 사용안내서가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괜한 시비다. "섹스-사용설명서"를 읽기 위해선 넥타이나 코르셋을 착용해선 안된다. 그랬다간 금새라도 셔츠 속에 땀이 찰 테고, 코르셋을 했다면 웃다가 숨이 막힐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하시면 되겠다.

 

번역작가도 그에 대해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주요 부분에 붙은 제목들이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3장의 제목은 "자, 즐겨~봅시다! - 섹스를 위한 옷차림", 4장은 "어디 보여줘봐 - 그 소중한 곳의 안과 밖" 그리고 마지막 19장 "FUCK - 영어 음란어 소사전" 까지 시종일관까지는 아니어도 군데군데 장난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 물론 마지막 19장 부분의 영어음란어 소사전은 국내의 음란 사이트로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선 검색어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미성년자들은 이 책을 읽지 말지어다. 그런다고 안 읽겠냐만...

 

그렇더라도 몇몇 부분에선 내나름의 금기들, 혹은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5장의 소제목과 6장 소제목 사이의 문제다. 5장의 제목에서 "남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세"를 들고 이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환관(내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6장에서 "여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처녀성"을 들고 있다. 물론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처녀성이 재산의 한 가치로 평가받아왔다는 점에서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거세와 처녀성의 상실은 현재의 성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물론 내용상에서 이 책과 저자가 의도한 바가 그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것이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한계라고 할 수는 있겠다. "사용설명서" 시리즈는 현재 모두 3권이 나와 있는데, 앞으로 나올 "마약" "섹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왜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소위 정치적 진보를 말하는 이들이 보수와 한 몸이 되는가? 물론 그래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스티븐 아노트의 요설은 때때로 듣기 거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