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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황지우 -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 황지우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는 그 집 뒤편에
1950년대 후미끼리 목재소 나무 켜는 소리 들리고, 혹은
눈 내리는 날,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 타종 소리 들린다.
김 나는 국밥집 옆을 지금도 기차가 지나가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빨리 죽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파자마 바람으로 누워 계신
그 옛집, 기침을 콜록콜록, 참으면서 기울어져 있다.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자도 폐인이지만
배를 움켜쥐고 쾡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신 아버지,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 한 1950년대;
새벽 汽笛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 공복감을 키우던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출발을 음모했던 것;
그게 내 삶이 되었다.
그리움이 완성되어 집이 되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내 삶이었다.
그러나 꼭 망명객이 아니어도 결국
폐인들 앞에 노스탤지어보다 먼저 와 있는 고향.
가을날의 송진 냄새나던 목재소 자리엔 대형 슈퍼마켓;
고향에서 밥을 구하는 자는 폐인이다

<출처> 황지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란 말, 가만히 보면 지금의 나 같다. 황지우는 폐허의 시인이다. 폐허를 사랑하다 못해 그 스스로가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주둥이가 노랗다.


애초에 우리들에겐 고향이 없었다. 부모를 따라 이리저리 풍랑치듯 옮겨 다니며 살았고, 우리들에겐 고향이 없으므로 이별도 없다. 수도관을 타고 전염되듯 옮겨온 염소 소독된 수돗물 맛이나 비행기 타고 멀리 이송되어 온 제주 삼다수로 자랐기에 고향의 물맛도 알지 못한다.

허구헌날 뜯어 고치는 도로와 전국토를 공사장으로 만든 토건국가의 개발열풍 속에 자란 우리에겐 정붙일 사람도 고향도 없다. 어딜 가도 밥 한 술 공짜로 얻어먹을 곳 없는 우리는 모두 제 땅의 망명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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