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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박정대 - 그녀에게


그녀에게

- 박정대


고통이 습관처럼 밀려올 때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일 거야

석양빛에 물든 검은 갈색의 바다, 출렁이는 저 물의 大地


누군가 말을 타고 아주 멀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거야

그럴 때, 먼지처럼 자욱이 일어나던 生은 다시 장엄한 음악처럼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되돌아오기도 하지


북소리, 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어봐

고독이 왜 그렇게 장엄하게 울릴 수 있는지 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봐


너를 뛰쳐나갔던 마음들이 왜 결국은 다시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오는지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온 것들이 어떻게 서로 차가운 살갗을 비벼대며 또다시 한 줄기 뜨거운 불꽃으로 피어나는지


고통이 습관처럼 너를 찾아올 때 그 고통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 봐

고통과 깊게 입맞춤하며 고독이 널 사랑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너만의 보폭으로 걸어가 봐


석양빛에 물든 저 검은 갈색의 바다까지만

장엄한 음악까지만


출처 : 아무르 기타, 문학과사상사, 2004


*



“먼지에서 먼지로(dust to dust)”
장례식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조사(弔辭)다. 나의 생명은 60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방안을 떠도는 먼지의 대부분은 내 피부 세포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죽은 흔적들, 다시 말해 내 세포들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유기적으로 소통한 흔적이다. 정상적인 피부 세포들은 28일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인간은 음식 없이 몇 주를 살 수 있지만 물 없이는 며칠 밖에 버틸 수 없다. 지구상 육지와 바다의 비율이 7:3인 것처럼 인간의 육체도 70% 이상이 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물 없이도 며칠을 살 수 있지만 호흡을 멈추면 수 분 안에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호흡을 하지만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행위는 화학작용으로 표현하면 ‘산화(酸化)’ 과정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매 순간 불타거나 녹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모든 포유류는 덩치와 무관하게 심장이 4번 뛸 때마다 1번꼴로 호흡한다. 포유류의 수명을 심장 박동주기로 나눠보면 거의 대부분의 포유류는 평생 8억 회의 심장박동과 2억 번의 호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다. 60년을 사는 코끼리나 2년을 사는 생쥐나 거의 같은 횟수의 심장박동과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다만 코끼리와 생쥐의 생체 시계의 초침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에 비해 인간의 심장은 분당 80번을 뛴다. 이런 수치라면 평균 20세에 도달할 무렵이면 심장 박동 수가 9억 회에 이른다. 그런데 인류는 비슷한 체중의 다른 포유류에 비해 3배 이상 오래 산다. 다시 말해 사람은 분당 80회라는 속도로 심장을 혹사시키면서도 분당 심장 박동 수가 25회인 코끼리만큼 오래 산다는 말이다.


사랑에 빠지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진다. 만약 빨리 죽고 싶다면 더 많이, 더 자주 사랑해야 한다. 호흡이 불타거나 녹스는 일인 것처럼 사랑이 당신을 좀 먹는다. 혹여 사랑이 깨졌거든 당신의 평균 수명이 연장된 것에 기뻐하라.


북소리, 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어봐

고독이 왜 그렇게 장엄하게 울릴 수 있는지 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봐


그런데도 왜? 난 빛의 속도로 죽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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