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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이영광 - 숲




-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子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주고도 제 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영광, 『그늘과 사귀다』, 랜덤하우스코리아


*


『어린왕자』를 통해 바오밥 나무를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 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 나무 씨앗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 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앨 수가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너무나 작은데 바오밥 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B-612 행성’이 ‘사람’이라면 뿌리를 공중으로 향한 채 거꾸로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는 바오밥 나무는 ‘인연’이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저 홀로 싹을 틔운다.


별이 그러하듯 문제는 사람이 숱한 바오밥 나무를 견뎌낼 만한 크기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무가 그러하듯, 숲이 그러하듯
“전부를 다 통과시켜주고도 제 자리에, 고요히” 그렇게 살라고 한다. 껴안는다는 것은 진정 이러하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 강한 것을 껴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주고도 제 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어쩌면 별의 크기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움켜쥐려는 마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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