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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외국시

체자레 파베세 - 한 세대

한 세대

- 체자레 파베세

지금은 도로가 펼쳐진 초원에 소년 하나
와서 놀곤 했어. 초원에는 맨발로
즐겁게 뛰노는 개구쟁이들이 있었지.
그들과 풀밭에서 맨발이 되는 건 즐거운 일.
멀리 불빛이 켜지던 어느 날 저녁 도시에서는
총소리가 메아리쳤고, 바람결에 무서운 난리 소리가
간간이 실려 왔었어. 모두들 침묵했어.
언덕 기슭에선 바람결에 실려 온 불빛들이
점점이 흩어졌지. 밤이 깊어지자
모든 건 빛을 잃었고, 졸리움 속에
신선한 바람만이 남아 있었어.

(내일 아침 소년들은 또다시 돌아다니고
아무도 난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감옥 안에는
말없는 노동자들이 있고, 누군가는 이미 죽었다.
길거리엔 핏자국들이 얼룩져 있다.
멀리 도시는 태양과 함께 잠이 깨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소년들은 초원의 어둠을 생각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어. 여자들마저
아무 말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어.
소년들은 이따금 계집애들이 놀러 오던
초원의 어둠을 생각하고 있었어. 어둠 속에서 계집애들을
울리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어. 장난꾸러기들이었지.
도시는 낮에는 즐거웠어. 저녁이 되면 말없이
멀리 불빛들을 바라보며 난리 소리를 들었어.

지금도 도로가 만나는 초원으로 소년들은
놀러 가곤 하지. 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을 지나가면 풀 냄새가 난다. 감옥 안에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때처럼 여자들은
아이들을 낳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출전 : 체자레 파베세, 김운찬 옮김, 피곤한 노동, 청담사, 1992년



*

지난 92년 이 책을 막 구입했을 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 책의 간지에 마구 낙서를 해둔 게 있었다. 지금 읽어보니 다소 낯 간지러운 글이긴 하지만 옮겨 본다.

그가 말한다.
"피곤해"라고....
머리칼을 고단한 몸짓으로 쓸어 올리지.
사랑하고, 이해하고, 지친 몸을 이끈다.
아주 가난하고 지루한 삶.
어디에도 마음은 없다.

풋, 우스워. 사는 게....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어떤 사람은 알고 있다.
그가 말한다.
"피곤해, 그리고 지겨워."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눈을 감는다.

아마도 그가 다시 눈 뜨는 일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귀찮아.
다시 그의 눈에 띄는 일이라곤 없을 것이다.
사라져 버렸다.
신기루처럼....
모든 것이...
heavy한 happy!
Fuck you so much and so I love you very much.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悲鳴, scream)이다.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非命, accidental death)이다.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碑銘, epitaph)이다.

노동자는 한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감옥의 주인이다.

1992년 난 아직 23살이었다. 좋은 때였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고, 그래서 안심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함께 차를 마시던 그녀와 영원히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