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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유하 - 뒤늦은 편지 뒤늦은 편지 - 유하 늘상 길 위에서 흠뻑 비를 맞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났더라면, 매양 한 발씩 마음이 늦는 게 탈입니다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라는 당신의 음성도 내가 마음을 일으켰을 땐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벚꽃으로 만개한 봄날의 생도 도착했을 땐 어느덧 잔설로 진 후였지요 쉼 없이 날개짓을 하는 벌새만이 꿀을 음미할 수 있는 靜止의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 후회처럼 소낙비를 맞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예비된 게 없어요 사랑도 감동도, 예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없는 들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게으른 몽상만이 내겐, 비를 그을 수 없는 우산이었어요 푸르른 날이 언제 내 방을 다녀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어둑한 귀가 길, 다 늦은 마음으로 비를 맞습니다 * "떠나야 .. 더보기
유하 - 자갈밭을 걸으며 자갈밭을 걸으며 - 유하 자갈밭을 걸어간다 삶에 대하여 쉼없이 재잘거리며 내게도 침묵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갈에 비한다면...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갔다 무수하게 야비한 내가 그들을 밞고 지나갔다 증오만큼의 참회, 그리고 새가 아니기에 터럭만큼 가벼워지지 않는 상처 자갈밭을 걸어간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우리는 서로에게 자갈이 되어주길 원했다 나는 지금, 자갈처럼 단련되려면 아직 멀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 알고 있다, 저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고 또 지나도 자갈의 속마음엔 끝내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상처는 어찌할 수 없이, 해가 지는 쪽으로 기울어감 으로 정작 나의 두려움은 사랑의 틈새에서 서서히 돋아날 굳은 살,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 나, 그대가 익숙해졌.. 더보기
유하 -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 유하 그대와 나 오랫동안 늦은 밤의 목소리로 혼자 있음에 대해 이야기해왔네 홀로 걸어가는 길의 쓸쓸한 행복과 충분히 깊어지는 나무 그늘의 향기, 그대가 바라보던 저녁 강물처럼 추억과 사색이 한몸을 이루며 흘러가는 풍경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곤 했었네 그러나 이제 그만 그 이야기들은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 어느날인가 그대가 한 사람과의 만남을 비로소 둘이 걷는 길의 잔잔한 떨림을 그 처음을 내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다른 기쁨을 가졌지 혼자서 흐르던 그대 마음의 강물이 또 다른 한줄기의 강물을 만나 더욱 깊은 심연을 이루리라 생각했기에, 지금 그대 곁에 선 한 사람이 봄날처럼 아름다운 건 그대가 혼자 서 있는 나무의 깊이를 알기 때문이라네 그래, 나무는 나무를 바라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