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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황동규 - 몰운대행(沒雲臺行) 몰운대행(沒雲臺行) - 황동규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 더보기
황동규 - 더딘 슬픔 더딘 슬픔 -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므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 어려서 할미를 어미인 양 여기며 살았다. 나 결혼하는 것까지는 보고 돌아가실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다던 할머니는 정말 나 결혼한 이듬해 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퇴근하고 돌아와 이제 막 잠들려는 찰나에 받은 전화로 할머니의 부음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당신의 죽음이 주는 황망함이 아니라 그 순간.. 더보기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외곽 샌디먼트라는 곳에서 영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가 영국계라고는 하나 그의 집안은 200년 이상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그의 가계는 대대로 성직자 집안이었으나 부친 J.B 예이츠는 법률공부를 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부친이 화가였다고는 하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예이츠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화가를 포기하고 시업에만 전념했다. 내가 예이츠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아직 대학생이지 못하던 시절 어느 후미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더보기
황동규 - 조그만 사랑 노래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참, 사랑이란..... 오나가나 애물단지다. 나이와 상관없고, 성별과 상관없고, 국적과 상관없이 사랑은 온천지에 공평하게 번진다. 바이러스처럼... 수많은 변종을 품은 채.... 사랑한다고 혼자서 열번만 되뇌인 뒤 처음 만난 사람을 쳐다보면 사랑에 빠지게 될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