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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


- 들어가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주는 일에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 라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특별한 기술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규범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흔해빠진 실용처세서들 가운데 한 페이지를 펼쳐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람구두가 말하는 건 다르다. 난 다르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난 특별하다는 말이지, 내가 당신보다 우월하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난 특별하단 말을 풀이하여 들려드리자면 이런 뜻이다. 불교적인 인연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하고 많은 웹사이트 중에서 구태여 이곳에서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당신은 지금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내 이런 글에 응답을 해준다면 우리의 인연은 보다 깊은 것이 된다. 그럴 때 난 남과 다른 존재가 되고, 당신의 글을 읽고 당신의 글에 내가 응답하는 순간 나는 또 이전의 당신과는 다른 인연을 만들게 된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자아만으로 존재하는 관계란 없다. 만약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물론 그것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엔 매우 특수한 관계로 우리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과도한 "몰입"의 결과라고 여길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연애는 몰입이다. 몰입이란 일종의 자기동일시일 터인데, 자기동일시된 대상에 대해서는 관계라는 적당한 거리가 주는 긴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거리 자체가 무시될 지경에 이른다. 대화의 본질은 섹스 혹은 사랑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 의미에선 섹스 혹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이란 다른 의미에서 사랑(보다 중립적인 단어로 "애정"이라고 해두자)이 주는 거리와 관계, 긴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이란 무엇인가? 한 번 궁리해보도록 하자.

타인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선 적당한 감정이입과 장애, 피드백(반응)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종종 관계기피증후군을 앓는 환자들과 대화하다보면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그 이야기들을 일순간에 무화시켜버리는 일을 볼 수 있다. 가볍든 무겁든 우리는 모두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과 그 관계를 적정한 거리에 놓아두고자 하는 마음을 동시에 품는다. 즉,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가시가 서로의 속살을 노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1. 감정을 이입하라.

관계(대화)란 타인과 하는 것이라고 앞서 정의해둔 바 있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글에서 정의하는 관계란 타인과 하는 부분에만 국한하자는 뜻이다. "관계(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시도)"란 서로의 관심과 문제를 공유하려는 태도이다.

관계맺기를 회피하려는 이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하거나 상처받은 자아를 지닌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타인의 온정과 이해라는 관계맺기의 기본틀을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타인이 보이는 온정과 이해를 적정한 계산과 속내를 감춘 것으로 단정지으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뜻이다. 온정을 동정으로, 이해를 타산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아를 보호하고자 한다.

상대가 관계 맺기를 원치 않을 때, 그런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먼저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지켜보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려다 돌아선 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는 쉽지 않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입이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역지사지"란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다만 이렇게 입장을 바꿔놓는 순간을 의식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연극에서 연기표현기법 중  "메소드연기"란 것이 있다. 아, 나랑 저 사람이랑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연기)해보자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은 타인의 경험과 느낌을 자기 자신의 경험과 느낌 안에서 재구성하고, 재창조해내는 것을 말하며, 그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감정이입이란 이해를 의미한다. 상대를 이해할 때 관계는 마치 축지법을 사용한 것처럼 일순간 가까와진다. 상대에게 관계를 규정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이것은 시나 소설 등과 같은 작품을 감상할 때도 매우 적절하다.)


2. 관계의 장애, 거리를 의식하라.

하나의 인격체는 자신만의 준거체제를 갖춘다. 준거체제란 세상과 사물, 타인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준거체제는 가치관이자, 본인 자신이 특정하게 행동하는 규범, 행동에 대해 본인 자신이 제시하는 명분이다. 개인이 지닌 태도란 혼자만의 태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있는 특정 집단의 규범에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기업의 노동자는 평소 애사심이 없더라도 누군가 타인에 의해 비난, 비판 받을 때 그것을 종종 자기 자신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그 노동자가 평소의 애사심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자신을 그 기업의 일원으로 자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위치, 주관적 지위를 규정하는 것은 이렇듯 다른 여러 개인과의 관계에서 파악한 자기 자신의 위치를 통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가 특정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길 위에 놓여져 있는 이정표 혹은 이정표가 될만한 지표상의 기호(건물이나 자연)들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판별하는 것이다. 타인의 존재가 없다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며, 완전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라면 인간의 자아는 붕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에는 장애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하지만 만약 당신과 내가 모든 점에서 동일한 준거체체를 갖추고 있다면 모든 점에서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존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흥미를 유발할 수 없다. 대화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대화의 장애요소이지만 동시에 대화를 이끄는 요인이 된다. 장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하나의 태도를 만든다. 즉 자신의 마음을 개방한 상태에서 우리에겐 차이가 존재하며, 그 차이가 대화를 이끌 것이란 마음을 먹게 해준다는 것이다. 타인과 자신 사이의 차이와 거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좋은 대화를 만든다.


3. 피드백(반응)을 보이라.

관계가 성공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드백이다. 웃지 않는 청중을 앞에 둔 웃기지 않는 개그맨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관계의 기본은 공감과 이해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매사 선의로 먼저 해석해주는 이와 나누는 대화가 가장 즐겁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상기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성숙"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 지 모르겠으나 "성숙(成熟, maturation)"이란 식물에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동물의 경우에도 생식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구태여 성적인 의미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숙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언가 '창조'할 능력을 갖춘다는 뜻이 된다. 즉, 성숙한 관계와 성숙한 대화는 자아와 타아 사이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 창조해내고 얻어낼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일방적인 관계(대화)는 훈육이 된다. 훌륭한 교육이란 선생과 제자 사이가 상호 교감을 통해 피드백하는 관계를 말한다.

"무르익을 숙(熟)"은 본래 고대의 농경의례에서 신에게 제물을 잘 삶아 바치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한자어에서 이 말은 종종 "잘, 깊이 있게, 충분히"의 뜻을 지닌 말로 쓰인다. 앞서 혼자서는 자신의 위치를 판별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종종 인간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기위해 홀로될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신은 홀로되었다고 여긴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그 결과 얻어낸 결과물을 공유하지 못할 때 혼자 있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훌륭한 대화는 성숙한 관계를 의미하고, 성숙한 관계란 대화를 통해 무언가 얻어내고, 창조할 수 있는 대화를 의미한다. 그것이 반드시 유형의 것이든 혹은 무형의 것이든, 그것이 단순한 위안이든, 격려가 되었든 훌륭한 대화는 무언가 만들어 내고, 얻는 것이 있다. 보다 훌륭한 대화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줄 수 있는, 주려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자신의 고민과 약점을 공개하고 나누는 일조차 때로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르침으로써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화엔 반드시 피드백이 존재하며,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의 핵심은 훌륭한 피드백을 주고 받는 일이다.


- 결론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에서 필수적인 몇 가지 요소를 살펴보았다.
감정이입, 장애, 피드백은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전부 복잡하게 이해하고 싶지 않을 때는 단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훌륭한 대화자가 모두 훌륭한 바람둥이들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훌륭한 바람둥이들은 반드시 훌륭한 대화자들이다.

바람둥이들은 대화하는 상대방을 자신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그들은 그렇게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이입을 보인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론 악질적인 바람둥이들은 보다 많은 것을 챙긴다.(비유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좀 재수없다. 흐흐.)

기술적인 조언 몇 가지를 곁들이자면, 대화 도중 다음과 같은 말들은 금기다.
"너만 그런 거 아냐!"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봤어."

와 같은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종종 사용하는 말이고, 충고들이다. 이런 말들은 자주 사용되는 빈도만큼 대화를 해친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너만 그런 거 아냐"란 말은 선의로 해석하자면 누구나 그런 고통을 가지고 있고, 나역시 널 이해한다는 뜻일 수도 있으나 뭘 그런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며, 상대의 고통이나 느낌을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는 듯 들린다. 즉,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말이 된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봤어."와 같은 말은 상대를 아둔한 인간 내지는 충분히 심사숙고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경우엔 듣는 이도 당장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했단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상의 모든 경우들은 결국 한 마디로 요약된다.
"당신의 관심과 애정을 주어도 좋을 만한 사람들을 대할 때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소중한 사람이 말을 걸 때는 그것이 아무리 하찮게 들려도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보여주라."
이것이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기술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귀함을 잘 잊는다. 마치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잘 잊듯이... 어떤 의미에서 흔하나 흔치 않기란 참 어렵다. 언제나 흔한 건 천해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이런 들을 천하게 여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야말로 얼마나 천한가? 소중함을 모르는 자들은 그 귀한 것을 잃은 뒤에 후회하여도 이미 늦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