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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DVD

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미안 리 감독의 "다크 트루스"에서는 오랜만에 앤디 가르시아가 진지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케빈 두런드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일단 나오면 그만한 정도는 항상 보여주는 포레스트 휘태커, 다미안 리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킴 코티스 등등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기본은 해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에콰도르의 타이카란 지역에서 상수도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정수시설이 오염되면서 이 지역에 집단적으로 티푸스가 발병하자 다국적 기업과 결탁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집단학살하는 사건을 둘러싼 갈등과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앤디 가르시아는 은퇴한 전직 CIA요원으로 남미에서 반체제농민운동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포레스트 휘태커)를 체포하고, 그의 조직을 와해시키는 공작을 펼쳤던 잭 베고시언으로 등장한다. 그는 청문회에 출두해 CIA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위증할 것을 부탁 받았으나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시인하면서 조직으로부터 축출당해 지금은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실"이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조직에겐 내부고발자로 낙인 찍혔고, 일반 대중에겐 남미에서 살인공작을 펼친 전직 비밀요원으로 여전히 그의 정체를 의심받는 잭 베고시언은 가정에도 편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조직에서의 일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비밀은 부부 사이를 멀게 갈라놓고 있다. 또 그는 아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몰라서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영화는 잭 베고시언의 일상과 함께 과거 '농민의 희망'이란 무장단체를 이끌었으나 베고시언에게 잡혀 감옥생활을 거친 뒤 이제는 평화적인 농민운동가가 된 프란치스가 다국적기업의 음모와 군부의 학살을 피해 밀림으로 달아나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문제는 다미안 리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밋밋한 연출에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탓인지 제대로 된 사회고발 영화로서도, 휴먼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의 기본 갈등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과 에콰도르의 학살당하는 농민 사이의 갈등이지만, 작게 보면 등장인물들 간에 세 가지 갈등이 있는데 하나는 앤디 가르시아와 사회(혹은 가정)의 갈등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직 CIA비밀공작요원 잭 베고시언과 농민운동가 프란시스코 프란시스와의 갈등, 마지막으로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 오빠 브루스 스윈톤(킴 코티스)와 여동생 모건 스윈톤(데보라 카라 웅거)의 갈등이다.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는 한때 무력항쟁을 이끈 인물이었지만 잭 베고시언의 공작에 의해 조직이 와해되고, 감옥에 다녀온 뒤 "마오는 틀렸고, 간디가 옳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자신을 구출하러 온 잭 베고시언과 손쉽게 화해한다.

선대가 물려준 기업 클리어벡을 이끄는 두 사람, 오빠 브루스는 성실한 사업가지만 선대의 기업을 잘 키워야 한다, 조직의 논리에 젖어 제3세계에서의 학살이 심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틀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생 모건은 철따라 결혼하고, 이혼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기업의 폼나는 일들(자선사업)만 해왔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앞으로 찾아와 에콰도르에서의 학살을 고발하며 자살해버린 한 청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잭 베고시언을 고용해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미국으로 데려오도록 시킨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그리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브루스는 자살해버리고, 모건은 오빠를 대신해 앞으로 윤리적 경영을 하겠다며 기업을 물려받는다. 잭은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이런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브루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며 그에게 묻는다. "돈의 탐욕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러자 전화한 사람이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는다. 그는 이런 일은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서 생기는 것이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답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다크 트루스(흑막)'일 게다. 영화는 볼만한 수준으로 좋은데, 연출이나 서사의 힘이란 측면에서 딱 그 정도 수준으로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