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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학

C.S.루이스 - 헤아려 본 슬픔

"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

언젠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보리라 마음 먹고는 있지만 J.R.R.톨킨에 비해 좀더 기독교적인, 아니 기독교인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라 C.S.루이스에겐 좀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기독교인을 부정하거나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좀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진 탓이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이자 현 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론가이자 저술가 중 한 명이었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 ~ 1963.11.22)는 아내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과의 애틋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옥스포드대학 교수이자 이미 유명한 소설가. 기독교 변증법 이론가였던 C.S.루이스에게 1950년 미국의 한 여성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C.S.루이스보다 16살이나 연하의 여성으로 이름은 조이 데이빗먼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자유분방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그룹의 일원으로 소설가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시인이었다. 빌 그레셤의 알콜 중독 등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부부는 잠정 별거 상태에 있었다. 1946년 무렵 조이는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는데, 루이스의 저작이 영향을 미쳤다. 조이는 1950년부터 루이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편지 교류는 시인이 소설가에게 띄우는 지적 교류의 형식이었다.

1952년 9월 루이스와 조이는 처음으로 만났다. 조이는 이듬해 두 아들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이주했다. 조이가 빌 그레셤과 이혼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이었다. 두 사람이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영국 정부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 전력이 있는 조이의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조이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루이스는 조이의 가족이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법적인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를 지켜봐왔던 루이스의 친구들 중에는 두 사람의 혼인 신고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이 곤경에 처한 조이를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조이의 수명이 몇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했지만 C.S.루이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조이를 단지 친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또 한 여성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루이스의 어머니도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충격과 슬픔은 더욱 컸다. 1957년 3월 21일, 루이스는 암에 걸린 연인이 입원한 병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자신에게 덜어달라는 기도를 했고, 기적처럼 아내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 일을 감사하게 여겼다.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그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4년간 두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슬픈 시간들을 보냈다. 1959년 골수암이 재발한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기독교인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며 깊은 실의에 빠졌던 C.S.루이스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조이와 사별한 후 인간의 상실과 성숙, 슬픔을 담은 저서 <헤아려 본 슬픔>을 N.W. 클러크라는 가명으로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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