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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담배와 조선 이야기




담배는 신대륙 원주민을 학살한 유럽인들에게 신대륙이 선물한 트로이의 목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신대륙이 원산지인 담배는 유럽인들의 손에 의해 베트남, 일본, 중국, 조선에까지 널리 퍼졌지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로 시작될 만큼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도입된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야귀야 담방귀야·동래울산 담방귀야·너의국도 좋다드니·조선국을 왜유왔나·나의국도 좋다마는·너의국을 유람왔네”란 민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담배는 17세기 초 일본을 통해 전래되었는데, 담배는 남령초(南靈草), 담바고(淡婆姑)란 이름으로 널리 퍼졌었는데, 이수광이 1614년에 발간한 『지봉유설』에 따르면 ‘담배 초명은 남령초(南靈草)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담바고는 타바코(tobacco)의 한자식 표기이지만, 남령초란 남쪽 국가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남아메리카 열대지대가 원산지인 담배는 유럽의 대항해 시대, 남만(현재의 베트남)을 거쳐 상선(포르투갈)을 타고 16세기 후반 일본에 전파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으로 흘러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보면 “병진(1616), 정사(1617) 연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1621), 임술년(1622)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와 술을 담배로 대신한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이처럼 담배는 조선에 전파된 지 불과 십년도 안 되어서 온 국토가 담배연기로 자욱해졌다.

18세기에 이르러 조선의 흡연 습관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던 조선의 농업체계를 교란할 정도의 작물이 되었다. 조선 사람의 담배 사랑이 그만큼 지독했단 뜻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환금 작물을 생산하여 부를 축적하는 농민(토지 소유주)들이 등장하게 되었단 뜻이기도 하다. 담배의 중독성에 기인하는 담배의 환금성으로 인해 조선의 농부들 중에는 식량 작물보다 환금 작물인 담배 농사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정자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가 천에 하나”라며 이런 문제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그들 자신도 대개는 골초였다.

애연가였던 정조는 『일성록』에서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은 더위를 당해서는 더위를 씻어주는데 이는 기(氣)가 스스로 하강하여 더위가 스스로 물러가게 된 것이고, 추위를 당해서는 추위를 막아주는데 이는 침이 스스로 따뜻해져 추위가 저절로 막아지게 된 것이다."

"식사 후에는 이것에 의지하여 음식을 소화시키고, 변을 볼 때는 능히 악취를 쫓게 하고, 자고 싶으나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이것을 피우면 잠이 오게 된다. 심지어는 시를 짓거나 문장을 엮을 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 그리고 고요히 정좌할 때 등의 경우에도 사람에게 유익 하지 않은 점이 없다”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성호 이익은 1760년 『성호사설』에서 흡연의 다섯 가지 유익함과 열 가지 폐해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이가 태호 선생(이익 자신을 가리킴)에게 묻기를, “지금 유행하는 이 담배란 물건이 사람에게 유익한 점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태호 선생이 답하기를 “담배는 가래가 목구멍에 붙어서 아무리 뱉어도 나오지 않을 때 유익하며, 비위가 거슬려 구역질이 날 때 유익하며,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돼 누울 수 없을 때 유익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체해 신물이 올라올 때 유익하며, 한겨울 추위를 막는데 유익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또 묻기를 “그러면 담배는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하고 해는 없습니까?”라고 하여, 태호 선생이 답하기를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 심합니다.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귀와 눈을 해칩니다. 담배연기를 쐬면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가 빠지며, 살이 깎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노쇠하게 합니다."

"내가 이 담배에 대해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 심하다고 하는 것은, 냄새가 독해 재계하면서 신명과 통할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축내는 것이 둘째이며,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걱정인데, 요즘 사람들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는 것이 셋째입니다."

게다가 담배는 잦은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1622년과 그 다음해에는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동래 왜관의 80칸이나 되는 건물들이 전부 연기 속으로 사라진 적도 있었다. 이처럼 오늘날 담배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은 이미 당시에도 문제로 지적되던 것들이었다. 이외에도 미국이 동구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밀수품 중 하나로 말보로와 켄트 담배를 적극 이용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조선 역시 담배를 재배해서 청에 밀수출했는데 그 양이 엄청나서 조정에서 특단의 조처를 강구해야 할 만큼 커다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대책이란 만약 담배 1근 이상을 밀수출하다가 걸리며 바로 목을 베는 참수형에 처하고, 1근 미만은 의주의 감옥에 가두고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주기도 했다(요즘엔 중국에서 만든 가짜 담배가 밀수되고 있다).

이처럼 무거운 형벌을 내렸지만 한 번 트인 물꼬, 게다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 쉽게 끊어질리 없었다. 담배에 대한 수요가 날로 증가하게 되자 농부들은 벼를 비롯한 기본의 식량 작물 대신 담배를 중심으로 농사를 지어 국가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아동 흡연도 문제가 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어린이가 담배 피우는 것은 아름다운 품행이 아니다. 골수를 마취하고 혈기를 마르게 하는 것이며, 독한 진은 책을 더럽히고 불티는 옷을 태운다 … 혹은 손님을 대하여 긴 담뱃대를 빼물고 함께 불을 붙이는 어린이도 있는데, 어찌 그리도 오만불손한가? 또는 어린이 매까지 때리며 엄하게 금하는데도 숨어서 몰래 피우고 끝내 고치지 않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혹은 어린이에게 담배 피우기를 권하는 부형도 있으니, 어찌 그리도 비루한가?”라고 말했다. 물론 이덕무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집안에 담배도구를 갖추고 있다가 손님에게 권하긴 했다.

한국은 담배가 오랫동안 국가전매물품이었고, 현재도 사실상 국가가 관리하는 품목 중 하나이다. 그런 탓에 한국의 담배 문제에는 국가의 문제(세수 증대를 포함해)가 밀접하게 연관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담배(궐련)를 군대의 사기 진작책으로 적극 활용했던 여러 나라들의 문제들을 따져보면 국가와 담배는 이래저래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최근 금연 바람을 주도하는 것이 기업의 풍토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이것 역시 노동자들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까지 국가와 기업이 협력하여 나서는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 탓에 담배는 단순히 흡연권과 혐연권 사이의 충돌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책으로 쓰게 되면 더 썰을 풀어놓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서 이만.... ㅋㅋ)





다음은 그와 관련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담배(산업) 관련 도서 목록이다.

의혹을 팝니다
- 담배 산업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
에릭 M. 콘웨이 | 나오미 오레스케스 (지은이) | 유강은 (옮긴이) | 미지북스 | 2012-01-15 | 원제 Merchants of Doubt: How a Handful of Scientists Obscurred the Truth on Issues from Tobacco Smoke to Global Warming


담배의 사회문화사
- 정부 권력과 담배 회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l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은이) | 인물과사상사 | 2011-06-29

역사 속의 담배
- 보랏빛 연기가 자아낸 의존의 문화
조던 굿맨 (지은이) | 이학수 (옮긴이) | 다해 | 2010-02-10

연경, 담배의 모든 것
-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l 18세기 지식
이옥 (지은이) | 안대회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08-01-14

흡연의 문화사
- 담배라는 창으로 내다본 역사와 문화
샌더 L. 길먼 | 저우 쉰 (지은이) | 이수영 (옮긴이) | 이마고 | 2006-09-11 | 원제 A Global History of Smoking (2004년)

담배와 문명
- 생활 속의 문명 1
이언 게이틀리 (지은이) | 이종찬 | 정성묵 (옮긴이) | 몸과마음 | 2003-01-30 | 원제 La Diva Nicotina : The Story of How Tobacco Seduced the World

3.3인치의 유혹, 담배
- 골초가 골초들에게 보내는 금연메시지 71
코너 굿맨 (지은이) | 김현후 (옮긴이) | 나무와숲 | 2003-01-15

담배, 돈을 피워라
- 씨앗에서 연기까지 담배산업을 해부한다
타라 파커-포프 (지은이) | 박웅희 (옮긴이) | 들녘 | 2002-01-15 | 원제 Cigarettes : Anatomy of an Industry from Seed to Smoke

시가
l 창해ABC북 1
에리크 데쇼트 (지은이) | 심현정 (옮긴이) | 창해 | 200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