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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이생진 - 사람

사람


- 이생진



어떤 사람은 인형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목마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생식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무정란으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배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도 모르고 허황되게 뜻을 높고 멀리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 자신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활한다면 어찌 불쌍하지 않으랴."



이생진의 시 <사람>은 진술로만 이루어진 시다. 진술로 이루어진 시는 교훈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 시는 서글프다. 그 어떤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시(詩)의 기본은 '묘사'다. 묘사만으로도 시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처음 써보는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또한 묘사다. 대개는 묘사하는 대신 진술하거나 설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묘사의 단계를 넘어선, 시인이 가장 쓰기 어려워 하는 시가 진술이라고 생각한다. 묘사가 화려한 검술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진술은 정수리를 겨냥해 곧바로 내리치는 진검(眞劍)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나 시를 쓰면 시인이라고 생각허지만, 시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그 감동에 깊이까지 성취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詩)가 성취하는 진경에서 화려한 묘사란 존재할 수 없다. 꼭 필요한 묘사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토록 우습게 끝나는 쉬운 결론이지만 무엇이든 삶 속에서 성취하기 어려운 것들 대부분이 참으로 쉬운 단어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듯 시의 세계도 그러하다. 이생진의 이 시가 보여주듯...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이생진의 이 시는 참으로 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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