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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DVD

이소룡 -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이소룡 박스 세트 [dts] -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 (5disc)
이소룡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2월

 

 

동양의 맨몸은 어떻게 서양의 총탄을 넘어서려는가?

우리는 '이소룡' 세대인가? 종종 '우리'란 말에 염증이 날 때가 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가족, 우리 식구, 우리 학교' 마치 이 때의 '우리(we)'는 '우리(cage) 혹은 요새(fortress)'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백인들이 요새를 세우고, 요새 밖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대시하고,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때로 "우리"란 말은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다. '우리는 이소룡 세대인가?'란 말은 '우리+세대'란 구분에 의해 문화적 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선생은 지난 2004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중2 때인 1973년, 이소룡(李小龍)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무슨 대수냐는 투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까지 홍콩 액션배우 가운데 나의 영웅은 어디까지나 ‘외팔이 검객’ 왕우(王羽)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룡 영화 중 국내에 가장 먼저 개봉된 ‘정무문’을 보고나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홀로 일본 도장에 쳐들어가 쌍절곤을 돌리며 무수한 상대를 단숨에 섬멸하는 격투 신, 불에 구운 고기를 온갖 인상을 쓰며 뜯어먹는 장면에 이어지는 진한 키스 신, 총을 겨눈 일본 경찰들에게 뛰어오르는 마지막 정지 장면 등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너무도 리얼했고 강렬했다. 영화가 아니라 진짜 싸우는 것 같았다.

시인이자 감독인 유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만약 홍콩영화식 세대 구분이 가능하다면 나는 '주윤발' 세대로 분류되어야 하고, 솔직히 "이소룡"보다는 "주윤발"이 그리고 "장국영"이 더 좋다. 그러나 홍콩영화의 전성기는 우리 세대를 끝으로 지났고, 양조위는 여전히 멋있지만 십대들의 우상은 아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난 것처럼 더이상 홍콩영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던 세대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늙을 것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우리가 "이소룡"을 잘 모르는 것처럼 "주윤발"을 잘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소룡의 쌍절곤을 모르는 것처럼, 주윤발의 쌍권총을 모르는 아이들로부터 소외될까?


DVD로 출시된 <이소룡 박스 세트>는 5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소룡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그리고 한 장의 이소룡 다큐멘터리이다.


1940년 11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경극 배우인 이해천과 독일계 그레이스 사이에서 출생해 1973년 7월 21일 사망한다. 올해 2010년은 이소룡 탄생 70주년이다. 이소룡은 러일전쟁에서 아시아 군대가 서양 군대와 전쟁을 벌여 최초의 승리를 거둔 뒤(1905년)로부터 정확하게 66년이 흐른 뒤 아시아 출신 배우가 서양인들에게도 통하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소룡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6살 때 "소년의 시작"이란 영화에 출연했고, 2년 뒤엔 "내아들 아천"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경극의 기본기를 배웠고, 훗날 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무술을 연마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홍콩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가 아내 린다를 만난 것도 이곳에서의 일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무술 도장을 차렸는데 이때 그의 도장에는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들이 등록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최고의 농구 스타였던 카림 압둘 자바, 대니 이노산토스 등도 이 때 알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종종 미국의 TV 시리즈에 단역으로 등장했지만, 주로 조역에 그쳤다. "쿵후" 시리즈가 기획되었을 때조차 그는 중국인이란 이유로 배역을 얻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그는 몇 편의 영화에 조역으로 출연하지만 일본인 주인공의 조수 혹은 청부살인업자로 등장해 우스꽝스럽게 죽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런 영화에 대한 갈증은 그로하여금 홍콩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당시만하더라도 임진모 선생의 회상대로 홍콩 영화계는 외팔이 검객으로 이름높았던 왕우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골든하베스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그의 첫 작품인 "당산대형"을 촬영한다. 태국에서 저예산으로 촬영된 영화였으나 이 영화에서 그는 이전의 홍콩 액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액션(이 영화에서 선보인 그의 '삼단차기'는 당시 대단한 화제였다)을 선보이며 흥행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를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 준 영화는 다음 작품인 "정무문"이었다. 이연걸이 리메이크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정무문"은 일본이 중국을 반식민지화하던 무렵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잔인무도한 무인들과 중국의 정의로운 무인이 격투를 벌여 그들을 사실상 몰살시킨다는 내용인데, 이는 외세의 침입을 통해 꺽여버린 중국의 자존심, 나아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크게 환영받는 소재였다. 이소룡의 쌍절곤과 그의 특이한 괴음이 처음 등장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 뒤 이소룡은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맹룡과강"을 촬영했고, 다음 작품으로 "사망유희"를 기획했다. 그러나 "사망유희"의 촬영은 지지부진해지고, 그 사이에 촬영한 영화가 바로 "용쟁호투"였다. 이때부터 이소룡의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영화 촬영과 제작에 대해 많은 중압을 받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추문들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용쟁호투"의 후반부 작업을 진행하던 중 기절했고, 베티 덴페이(미용사, 애인?)의 집에 들러 쉬던 중 두통약을 먹고 잠들었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이소룡의 죽음은 때이른 것이었고, 예상밖의 결과였다. 그는 종종 거리에서도 무술 고수들의 도전을 받곤 했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그는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였고 승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무술이 결코 영화에서만 보여지는 쇼가 아니라 실제의 무예임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는 영화에서만 강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무척 강했다는 것이 그를 아는 지인들이 말이었다. "정무문"의 엔딩 장면은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같은 비슷한 시기의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이소룡류의 아시아식 액션은 맨몸(동양의 전근대)의 동양인이 서구의 총구(서양의 근대)와 어떻게 대결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아시아의 액션 배우는 한 방의 총탄에도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어떻게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룡은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자부심을 심어 주었고, 법보다는 언제나 주먹이 가까왔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와 흡사한 쾌감을 주었다.


그의 액션은 서구식 정의(正義)로 포장된 격투하곤 달랐다. 이소룡은 늘 실전같이 싸웠고, 승리하기 위해 적의 사타구니를 걷어차거나 물어뜯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그의 무술 솜씨는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승리하기 위해선 언제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우리의 70년대, 아시아의 70년대는 비록 식민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자존심을 회복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했던 시대였다. 이소룡이 상징한 것은 그런 힘은 아니었는지...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아버지, 삼촌 세대라 할 수 있는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억울함도 역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먹고 사는 일, 생존하는 일에 급급했던 이들에게 이제와서 정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심판하려든다고 그렇게 억울하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빈부격차가 그 어느때보다 심해지던 1980년대를 관통해온, 주윤발 세대인 나는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 이 DVD의 화질은 홍콩영화치고는 상당히 개선된 편이지만 오래전의 영화를 복각한 한계는 있다. 서플먼트는 별도의 디스크가 보충해주는 셈이고, 나름대로 영화 해설을 보며 보는 재미는 느낄 수 있다. 이걸 사보고 나니 같은 레이블에서 출시된 "영웅본색" 시리즈도 구입하고 싶어졌다. 참, "용쟁호투"는 이 세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