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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Res non verba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1863-1928)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1863-1928)


자화상 - 아뜰리에, 1905, 베를린국립미술관



독일 화가, 조각가이며 판화가, 바이에른의 테텐바이스 태생. 뮌헨에서 공부하였으며 1893년 뮌헨 분리파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1895년 뮌헨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칸딘스키, 클레를 가르쳤다. 슈투크는 또한 베를린, 드레스텐, 스톡홀름, 밀라노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아르 누보, 즉 유겐트슈틸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으며, 뮌헨의 자택을 통해 유겐트슈틸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장식적이고 평평한 색채를 사용해 그림의 분위기를 조절한 것은 어느 정도 후대의 발전을 예시하는 것이다. 슈투크는 지금은 잊혀졌지만 생전에는 높은 명성을 누렸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 천국을 지키는 파수꾼, 1889, 250 × 167cm


프란츠 폰 슈투크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상

창세기에는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 한번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1:27)이고. 좀 지난 다음에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2:7)고 적고 있다. 성서에 대해 음모설을 들이대긴 우습지만 한자 한획도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간혹 이 부분에서 무언가 숨겨진 진실이 있지 않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 죄악(Die Sünde), 1893, Oil on canvas, 945 x 595mm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였을 때, 모든 만물이 짝이 있는데 아담만 홀로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위해 흑을 빚어 여자를 만들어 릴리쓰(Lilith)라고 이름지었다. 하느님이 그녀를 아담에게 데려가자마자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다. 아담이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네가 밑에 누워야 한다”고 말하자 릴리쓰는“네가 밑에 누워야 한다. 우리 모두 평등하게 땅에서 만들어진 존재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자 릴리쓰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아담은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렸다. “우주의 주인이시여, 당신이 내게 준 여자가 도망간 걸 보소서.” 하느님은 즉시 세 천사를 보내어 릴리쓰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프란츠 폰 슈투크 - 관능(Sensuality), 1891, Collection Abraham Somer, Los Angeles


세 천사는 홍해까지 달려가서 릴리쓰를 붙잡았다. 그들이 그녀를 잡고 말하길“우리와 같이 가겠다면 같이 가자. 그렇지 않겠다면 바다에 빠져 죽으리라.” 릴리쓰는 하느님이 나를 창조한 것은, 오직 궂은 병으로 생후 8일 이후 아기를 괴롭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것을 안다. 남자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8일까지는 봐 주고 그 후에 해를 가하겠다. 그러나 여자 아기가 태어났을 때에는 12일의 유예 기간을 줄 것이다.”라고 저주하며 외쳤다. 천사들은 완강히 저항하는 그녀를 도저히 데려갈 수 없었다.

오늘날 릴리쓰는 페미니스트들과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과거의 예술가들에게도 여성상위를 주장한 릴리쓰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으로 비추어졌던 모양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의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성이 릴리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여성이 인류를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한 이래 여성의 상징 중 하나이자 가장 징그러운 혐오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뱀 '이 등장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도 죄악과 관능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 - Wounded Amazon, 1903,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서양회화에서 상당히 많이 그려지는 주제 중 하나가 '아마존의 여전사'들이지만 이들이 멀쩡하게 그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난 거의 보지 못했다). 이들은 대개 부상당하거나 남성 전사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들이 등장하는 신화 속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신화 자체가 여성들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남성에 대한 저항? 꿈도 꾸지 마라!"는 메시지...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 목욕하는 수잔나, 1913, 56,6 × 17,8 cm


'롯의 두 딸'과 더불어 르네상스 이래 서양화가들이 성서에서 가장 많은 모티브를 따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목욕하는 수잔나>는 구약성서 다니엘서 13장 1절에서 64절에 나오는 이야기로 부유한 유대인의 아내 수잔나는 정원에서 목욕하는 것을 즐겼다. 이것을 안 두 사람의 늙은 장로가 이것을 몰래 엿보고는 자신들과 관계하지 않으면 그 집의 남자 몸종과 관계했노라고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했다. 물론 결백한 수잔나는 이 협박을 물리쳤고, 장로들은 수잔나가 불륜행위를 했다고 널리 소문을 퍼뜨렸다. 당시 간통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예언자 다니엘은
"당신들은 증거와 심문 없이 이스라엘의 딸을 정죄하였소. 두 장로가 수잔나에게 거짓 증언을 하였소."라고 하였다. 다니엘은 그들에게 "두 증인을 각각 데려오시오. 내가 직접 들으리다"고 했다. 다니엘은 장로들에게 각각 수잔나가 간음한 현장의 나무 밑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한 장로는 소나무에로 데려갔고, 다른 한 장로는 느릅나무로 데려갔다. 거짓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두 장로는 모세의 율법대로 처벌받았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 목욕하는 수잔나, 1913, Gouache, Papier, 63 × 25 cm



물론 이 이야기는 현명하고 정당한 재판 절차를 통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이지만 중세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 같은 '정의'로운 교훈 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를 훔쳐보는 두 장로(남성의 시선)와 여인의 나체에 주목했다. 1550년대의 틴토레토(Tintoretto), 반다이크(Van Dyke), 렘브란트에 이르는 많은 화가들이 <목욕하는 수잔나>를 그렸지만 당시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작품들은 사실상 포르노 취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