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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언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 2007년 08월 31일자 <경인일보>

언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7월 19일 23명의 한국인 인질들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있었다. 인질 가운데 2명이 비극적으로 살해당했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석방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했다는 보도가 우리를 감동시켰다.

피랍사태가 발생한 뒤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위험한 정세를 감안해 한국 언론인들의 현장 취재를 제한했다. 정부는 또 다른 납치사건을 방지하고, 피랍 인질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도 석방교섭과 관련해 민감한 보도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한국 국민의 생사가 담긴 기사를 외국 언론을 통해 들어야 했다. 기자는 현장이 생명이란 말대로 현지로 달려가고 싶었던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의 보도통제 혹은 보도자제 요청은 지난 2003년 8월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도 있었다. 명분 없는 전쟁 파병이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정말 파병부대의 안전을 위한 탓인지 몰라도 3천여명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명으로 파병되면서도 환송식마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가 요청한 엠바고 요청을 파기한 언론사와 알력도 있었다. 정부의 강경한 분위기 탓인지 파병 직후 자이툰 부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언론의 취재활동이 제약당한 얼마 뒤, 미군 군납업체 직원이었던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리 언론은 그가 살해되기까지 교섭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외교력 부재를 파헤쳐 연일 질타를 가했다. 어쩌면 지금 나머지 인질들의 무사귀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성공한 것이지만 거슬러 오르면 당시의 대처방식을 질타했던 언론 덕택이기도 하다. 이처럼 언론과 권력이 불편할 때 진정한 국익에 보탬이 된다.

최근 정부는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겠다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언론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은 권력의 당연한 속성이지만 이를 둘러싼 정부와 언론, 정치권의 갑론을박은 다른 한 편으로 공허하다. "공무원의 언론 취재활동 지원은 정책홍보 부서와 협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한 총리훈령 11조는 명백하게 언론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출현한 신규 언론사들과 뉴미디어의 진입장벽을 해소한다는 긍정적인 측면 역시 지니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과거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정책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좀 더 다급한 언론의 위기를 은폐하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다.

지금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정치권력이기 보다 기업권력이다. 얼마 전 우리는 삼성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폭로한 기자가 도리어 재판정에 서는 것을 보았다. 삼성 관련 기사 삭제에 맞서 편집권 사수를 외친 '시사저널' 기자들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스스로 잡지를 창간하는 과정을 보았다. 최근 새롭게 부활하는 OBS 경인TV 역시 '공익적 민영방송'을 위해 조합원들이 2년 반에 걸친 실업자 생활을 피눈물로 감내해야 했다.

뉴미디어의 도전으로 위기에 빠진 신문업계의 상황을 대표적 사양업종인 석탄산업에 빗댈 만큼 기업으로서의 언론, 특히 신문업계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언론의 광고비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를 일컬어 '제4의 권력기관'이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사회에 판매하는 '언론기업'이기도 하다. 만약 언론이 판매하는 것이 사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정론(正論)이 아니라면 언론이 판매하는 것은 바로 구독자수와 구독자들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언론의 상품인 구독자를 구입하는 것은 기업이다. 그 순간 언론은 자본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 독립의 가치가 소중한 까닭이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8월 31일 (금)  <프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