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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학

조지 오웰- 동물농장

동물농장, 회의주의자 벤자민 보다 복서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03년 6월 25일, 당시 인도의 식민지였던 벵골의 모티하리에서 식민지 하급관리의 아들(본명은 Eric Arthur Blair)로 태어난다. 그의 탄생일이 기묘하게도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가 오웰은 우리나라에 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6.25에 태어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사망했고, 1945년 출간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물농장(Animal Farm)』이 외국어로 옮겨져 소개(1948년, 김길준)된 최초의 나라가 한국이었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이 냉전의 최전선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해외정보국(VSIA)은 1942년 6월 창립된 이래 주로 적대국에 대한 선전방송을 해온 기관이다. 전후 냉전 기간에는 주로 공산권 국가에 자유주의 진영의 이데올로기·문화·생활수준 등을 소개·선전하는 일을 했고, 한국어 방송은 1942년부터 시작했다. 오웰의 『동물농장』은 반공(反共)문학으로 분류되어 신생공화국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해 이용되었고, 같은 이유로 『1984년』 역시 출간되자마자 우리말로 옮겨진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동물농장』은 여전히 문제 있는 책으로 분류되었다. 저자인 조지 오웰이 공산주의자(사실은 무정부주의자)였고, 『동물농장』이 기본적으로 민중봉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하급관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오웰은 1911년 수업료를 감해준다는 조건으로 사립기숙학교인 이튼에 입학하지만, 부유층이나 귀족 등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감 속에 더 이상의 진학을 포기하고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의 경찰이 되었다. 그는 식민지의 말단 관리로 근무하며 서구 제국주의의 현실에 대해 새롭게 눈뜬다. 오웰은 식민지 경찰로 근무하며 느꼈던 여러 생각과 경험들을 『제국은 없다(서지원, 2002)』와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 2003)』에 담아내고 있다. 이후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 새로운 세계대전의 조짐이 농익어가던 불황의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에서 부랑자로 살아가며 하층민의 삶을 실제로 체험했다. 이때의 기록이 그의 처녀작이기도 한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삼우반, 2003)』이었다.

사회주의자가 된 오웰은 1937년 말 스페인시민전쟁에 무정부주의(POUM)의 시민의용군으로 참전한다.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이 잘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스탈린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세력과 무정부주의 세력 간의 심각한 정치 투쟁을 통해 오웰은 이후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바르셀로나에서 부상을 당한 오웰은 이후 박해를 피해 귀국하여 스페인시민전쟁 참전기라 할 수 있는 『카탈로니아 찬가(민음사, 2001)』를 썼다.

오웰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동물농장』을 처음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1937년 스페인시민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막상 그가 집필한 것은 1943년 말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웰이 소설을 탈고했을 무렵에는 영국의 어느 출판사도 선뜻 이 책을 출간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영국과 소련이 나치를 상대로 전시동맹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의 비위를 거스를 것이 명백한 이 책의 출판을 꺼렸다(1943년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아직까지 서구(영국)의 지식인들 - 자유주의적이었건, 좌파적이었건 간에 - 이 소련의 스탈린과 소비에트 정부에 대해, 심지어는 스탈린주의에 대해서까지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던 시대 분위기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오웰은 당시 영국의 BBC방송이 적군(赤軍) 25주년을 축하하면서도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 개탄했다. 그는 이미 내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준(혹은 정치적 이해관계)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을 왜곡하는 상황에 분노했다.

이와 같은 분노를 담고 있는 작품이 바로 『동물농장』이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동물농장』은 1917년 2월 혁명으로부터 1943년의 테헤란회담에 이르는 소련의 역사를 우화적으로 재현하면서 스탈린의 전체주의 독재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장주 존스의 농장에서 빈곤한 처지에 놓인 가축들은 수퇘지 메이저(마르크스) 영감에게 감화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가축들은 비교적 영리한 돼지인 스노볼(트로츠키), 나폴레옹(스탈린), 스퀼러(스탈린의 추종자)의 지도 아래 모든 동물이 평등한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문맹퇴치를 위한 학습을 거치며 말과 오리에 이르는 모든 동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농장의 운영에 참여한다.

그러나 풍차건설을 계기로 벌어지기 시작한 권력투쟁 속에서 이상주의자였던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숙청당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전 농장주인 존스가 쳐들어온다는 위협과 풍요를 약속하며 동물들의 자유를 빼앗는다. 반항하는 동물들은 개와 돼지들을 내세워 공격하고, 반동으로 몰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과거의 농장주보다 더한 사치와 타락 속에 마침내 과거의 “두 다리는 나쁘고 내 다리는 좋다”던 구호마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는 구호로 탈바꿈시킨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스탈린과 스탈린식 사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와 풍자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이 부분만 주목하는 것은 오웰의 본래 의도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의 진정한 실현을 믿었고, 마침내는 그 실현을 위해 헌신했으나 결국 푸줏간으로 팔려가야 했던 복서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교훈들을 준다. 또 나폴레옹이 필킹턴(히틀러)과 손잡는 모습은 역사적으로는 1939년 8월, 독일 외무장관 폰 리벤트로프와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직접 서명하면서 체결된 독·소 불가침 조약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자본주의화 과정)를 통해 타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웰이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진정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자 했던 러시아 2월 혁명이 또 다른 전체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스페인시민전쟁을 통해 경험한 좌파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 관료화된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속류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참한 예감을 담아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오웰은 사회주의자 혹은 무정부주의자로서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혁명 그 자체의 허망함을 비판하는 회의주의자 당나귀 벤자민 보다 혁명에 헌신하고자 했으나 비판적이지 못했던 복서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미국에서 이 책 『동물농장(Animal Farm)』이 '문제적 서적'으로 낙인찍혔던 진정한 원인이 아니었을까.